바닥에서 시작된 기록
그녀가 처음 입원했을 때 나이는 30대 후반이었고, 의학적으로 이른바 ‘바닥(rock bottom)’에 이른 것으로 보였다. 여성 알코올중독자가 이 바닥에 닿는 시기는 대개 마흔 언저리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여성은 신체적으로 알코올에 더 취약하고, 사회적 낙인 또한 남성보다 훨씬 무겁게 짊어지기 때문이다(Bauer, 1982, p. 19).
이 취약성은 오늘날 ‘텔레스코핑(telescoping)’이라 불린다. 여성은 음주를 시작한 뒤 심각한 문제에 이르기까지의 진행이 남성보다 빠르게, 마치 망원경을 접듯 압축되어 나타난다. 같은 양을 마셔도 체내 수분이 적고 위장의 알코올 분해효소가 낮아 혈중 농도가 더 높이 치솟는 생리적 조건이 그 배경에 있다. 그래서 여성의 하강은 더 가파르고, 그것을 지켜보는 사회의 시선은 더 가혹하다.
2. 진단 이면의 외상
융이 제시한 이 사례사는, 어린 시절이나 청소년기에 성적 학대를 겪은 여성들에게서 되풀이해 나타나는 자기파괴적 하강의 이야기와 닮아 있다. 겉으로 드러난 가족력부터 보자. 그녀의 아버지는 간경화로 사망했고, 어머니 역시 융의 표현으로 “어느 정도의 정신질환, 겉보기에 광기와 마비가 있는 상태”를 앓았다(CW 1, para. 197). 광기와 마비가 함께 온 정황은 당시 흔했던 진행마비(마비성 치매)를 짐작하게 한다.
당대의 통념으로는 알코올중독이 특히 부계를 통해 유전된다고 여겨졌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알코올사용장애의 유전적 소인은 실재하지만(유전율은 대략 절반에 이른다), 그것이 ‘부계 라인’을 따라 전해진다는 생각은 시대의 관념에 가깝다. 어느 쪽이든, 어머니의 질환이 딸의 알코올 문제를 악화시켰을 가능성, 그리고 동반질환(dual diagnosis)의 가능성은 함께 고려할 만하다.
그러나 이 진단의 밑바닥에는 유전보다 더 결정적인 것이 있었다. 트라우마다. 융은 그녀가 스스로를 심하게 더럽혀졌다고 여겼으며, 성적 외상에서 비롯된 “현저한 히스테리”를 보였다고 기록했다(CW 1, para.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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